음대생 개발자의 2021년 회고 - 2. 첫 이직

'음대생 개발자의 2021년 회고 - 1. 개발자가 되기까지...'에 이은 두 번째 글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SI개발자의 삶, 퇴사 이유 그리고 이직을 통해 얻고자하는 것
세 가지 주제로 글을 풀어볼 생각입니다.

1. SI 개발자의 삶...

약 2년간의 기간동안 총 3건의 굵직한 공공기관 프로젝트에 웹 개발자로 투입되었습니다.

주변 프리랜서 개발자분들이 소위 뻥튀기 경력으로 투입되지 않은걸 회사에 고마워해야한다(?)라거나 상당히 운이 좋은 편이라는 말을 종종 해주셨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다른 SI 신입 개발자들은 경력이 뻥튀기되어(+2~4년)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일이 빈번하더군요.
* 아내의 국비학원 동기는 입사하자마자 4년차 중급 개발자로 프로젝트에 투입되었습니다.

저는 반대로 경력이 뻥튀기 되지도 않았고, 고맙게도 회사에서는 늘 좋은 사수를 붙여줬습니다.


커뮤니티에서 악명이 높은 SI 프로젝트, 하지만 처음 겪었던 현장은 그 악명만큼 근무 난이도가 높진 않았습니다.
* 심지어 손에 꼽는 악명을 자랑하는 차세대 프로젝트조차 워라밸이 보장됐었습니다.

월화수목금금금이란 말도 개발단계에는 전혀 없었습니다.
개발단계일 때는 말이죠.

개발 완료 시점, 즉 사이트 오픈 시점에 프리랜서 개발자는 대부분 철수하게 되고 남아있는 정직원 개발자들이 안정화 기간을 도맡습니다.

이 때부터 월화수목금금금이 시작됩니다.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절대 다수의 프리랜서 개발자들 + 소수의 정직원 개발자들로 꾸려져서 진행되기 때문에 안정화 기간에는 소수의 정직원만 남게 됩니다.
* 물론 좋은 SI 기업들도 있으니 모두가 이와 같지는 않다고 합니다.

오픈 직후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개선/결함 사항들에 대해, 전임 개발자로부터 간단하게 인계받은 내용을 확인하며 프로그램을 수정합니다.

짧은 안정화기간으로 시간마저 촉박합니다.
인계받은지 얼마 안 된 화면이 갑작스러운 에러로 사용이 불가능해지고 긴급건으로 분류되죠.
그렇게 긴급건은 자꾸 쌓이고, 그 외의 개선/결함사항들도 끊임없이 쌓이며 동시에 엑셀로 모든 내용을 문서화해야합니다.

게임으로 예를 들면 알파 테스트 기간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SI 기업을 다니며 단연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간이었죠.
* 가장 길게는 약 4개월간 월화수목금금금 생활을 했었고 평균 퇴근 시간은 1시 ~ 3시 사이었습니다.

안정화 기간은 보통 1~2개월이지만 
개발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보통 1~2개월은 더 연장되곤 했습니다.

이 때부터 SI가 가진 특유의 단점이 도드라지기 시작했죠.

- 일단 돌아가기만 하면 돼
- 단순한 복사/붙여넣기
- 친절한 개발 금지
(위 내용들에 대해서는 '퇴사이유'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2. 퇴사 이유

2022년 3월 1일부로 갓 3년차 개발자가 되었습니다.
이쪽 업계에서 초상(초급 + 上) 개발자라고 부르는 자리에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2022년 1월부터 퇴사를 고민하고있었습니다.
이유는 세 가지였습니다.

1. 일단 돌아가기만 하면 돼

개발자는 고민을 통해 가치있는 코드를 한 줄 한 줄 적어내려가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SI 업계의 분위기는 이와 사뭇 달랐습니다.

'돌아가기만 하면 돼.'
'그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나? 어차피 결과는 똑같은데?'
'시간 없어 그냥 해'

저도 SI 개발자이기 때문에 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질 좋은 코드가 아닌 돌아가기만 하는 코드를 작성하는 것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손으로 똥을 싸는 기분이었습니다.

2. 단순한 복사/붙여넣기

우선 코드를 이해하고, 복사해오고, 상황에 맞게 커스터마이징할 줄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충분히 모듈화/공통화 할 수 있는 것 조차 시간이 아깝다고 똑같은 코드를 여기저기 붙여넣기 하는 것은 유지보수 측면에서 매우 비효율적이며 개발자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행위입니다.

3. 친절한 개발 금지

지금은 저 또한 친절한 개발은 하지 않습니다. 애증의 문제라고 해야할까요?

초창기에는 맡은 화면을 한 땀 한 땀 테스트하며 불편한 부분을 미리 개선하고 새로운 편의 기능을 추가했습니다.
훗날 내가 만든 화면의 사용자들이 얼마나 편해할지를 상상하며 흐뭇해하곤 했죠.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 현업 요청 있었나?
- 요청 들어온거 아니면 미리 해주지 마

처음 저 말을 들었을 땐 멍 했습니다. 개발자는 자고로 사용자들의 편의를 도모할 줄 알아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정 반대의 답변을 들은겁니다.

하지만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런 행동은 협업을 방해하고 절차를 무시하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팀 내부 회의도 없이 홀로 친절함에 빠져 친절한 개발을 하게 되면 동료 개발자들에게 부담을 주는 '빌런'이 될 수 있죠.

- 어? 저 분은 해주시던데...

하지만 개발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도는 바닥을 찍게되었습니다.

프로그램 애정도가 떨어지니 개발이 재미가 없어집니다.
내가 SCV인지 프로브인지 드론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분명히 Java 응용소프트웨어 개발자 양성과정을 밟아 개발자가 되었는데
SI 업체를 다니며 겪은 Java는 그저 클라이언트와 서버 사이의 '문'이었습니다.

모든 로직은 한방 쿼리에 담겨있었고 업무의 80%는 쿼리를 작성하는데 할애했습니다.

더욱이 클라이언트, 즉 저희 업계에서 '화면단'이라고 부르는 것은 JavaScript도 Jquery도 혹은 Vue.js나 React.js같은 js 프레임워크도 아닌
철저하게 화면 툴(Websquare, MiPlatform, Nexacro 등) 로만 개발하는 환경이었습니다.
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tool user가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환경은 '내가 과연 개발자인가?' 라는 고민을 거듭하게만 했습니다.
결국 퇴사를 결정하고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서비스 기업으로 이직하고자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나름 선배 개발자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았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동안 상상도 못했던 금액에 SI 프리랜서 제안과 이직 제안이 들어왔었습니다.
개발자는 3년만 버티면 된다던 한 유튜버의 말을 2년만에 직접 겪어보았습니다.

머릿속이 고민으로 가득했습니다.

- 초월적인 급여를 받는 행복한 프리랜서 생활
- SI 프로젝트 전체적인 흐름이 눈에 보이기 시작
- 그냥 서비스 가지 말고 이대로 SI 귀신이 될까...?

이대로 안주하고싶은 달콤한 유혹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민들을 알고계신 선배 개발자분들의 말씀이 제 뒷통수를 문자 그대로 후려갈렸습니다.


'너 이번에 서비스로 이직 못하면 평생 이 바닥에 있어야 돼.
'우린 정체성이 없어. 백엔드도 프론트엔드도 아니야.'


더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어차피 서비스 회사로 갔다가 쫓겨나더라도 SI는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곳이였습니다.
사직서를 제출했고, 모든 이직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3. 이직을 통해 얻고자하는 것

이직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두 가지 입니다.

1. 개발자로서의 정체성
2. 깊이 있는 기술력

이직을 준비할 때 우선 Spring Boot에 해당되는 회사들을 검색했습니다.
더 이상 정체성 없는 개발자로 남고싶지 않아 주니어 백엔드 개발자를 채용하는 회사들에 지원했습니다.

그 결과, 비록 소기업이지만 찾고있던 기술 스택(Spring Boot, AWS, Linux, Git...)과 포지션(백엔드)이 딱 맞는 회사에 합격하게 됩니다.

다음주면 평소 선망하던 기술 스택을 모두 가진 회사에 출근하게 됩니다.
누군가가 '어떤 개발자세요?' 라고 물어본다면 이제는 적어도 '백엔드 개발자' 라고 말 할 수 있는 정체성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백엔드 개발자'라고 말만 할 수 있는 상태지 진짜 백엔드 개발자는 아닐겁니다.

올해 어떤 노력을 통해 얼만큼 깊이 있는 기술력을 가진 개발자로 성장하느냐가 진짜 정체성을 찾아주는 답이 될 것 같습니다.

비전공자, 예체능, 국비출신

위 세 가지 키워드는 항상 저를 절박하게 만듭니다.
그냥 SI 개발자로 남아 편하게 먹고 살 수도 있었겠지만, 절박함에서 탈출하기 위해 저는 다시 모험을 선택합니다.

궁지에 몰린 쥐는 절박함에 고양이를 문다고들 하지요.
올해도 저는 고양이를 물 작정입니다.

4. 마무리

2022년 봄입니다.
오늘은 마지막 프로젝트를 마무리짓고 철수함과 동시에 퇴사한 날입니다(2022.03.31).
그리고 동년 4월 4일부로 새로운 회사에 출근합니다.

1년이 지난 뒤 오늘 작성한 글을 보며 후회하지 않고 또 뿌듯해할 수 있도록
올해도 열심히 살아볼 예정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웹페이지 즐겨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