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대생 개발자의 2021년 회고 - 1. 개발자가 되기까지...


이 글은 사실 처음 써보는 회고록으로 2021년까지의 인생 전반적인 회고가 담길 예정입니다.
회고록을 통해 스스로 생각을 정리해볼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존경하는 개발자 두 분을 벤치마킹 해서 작성하는 회고록으로...
한 분은 직업 전향 시기에 큰 영감을 주신 이동욱
또 다른 한 분은 예체능 출신 개발자인 저에게 훌륭한 자극제가 되어주신 한정수


1. 음대생이란...

신입생으로 음악대학에 입학했을 때 부터 다른 건 모르겠지만 전공실기는 모두 A를 받고 졸업하겠노라는 목표를 가지고있었습니다.

매 학기마다 약 일곱 분 정도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시는 교수님들, 즉 Professional Pianist들로부터 받는 실기 점수가 평균 A가 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테크닉, 감정선(=표현력), 무대매너, 노력 등 아무리 잘 해도 일곱명의 마음을 모두 사로잡기는 쉽지 않죠.

터진 손가락 때문에 건반 위가 피로 미끄러워질정도로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처음 가졌던 목표를 달성한 채 2017년도 2월에 목원대학교 건반악학부 피아노과를 실기수석 엣헴 졸업했습니다.


실기 점수 A+ 는 그저 죽어있는 전설이었다. 그리고 난 그 전설을 깨웠다.




여느 음대생들이 다 그렇듯(특히 남학생들은...) 4학년은 심리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 첫 번째 이유는 졸업 준비
- 두 번째 이유는 졸업 연주 준비
- 세 번째 이유는 앞으로의 미래...

주변에 많은 동료들과 교수님들은 제가 유학을 가길 바랐고 음악 공부를 지속하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부담스러운 스물아홉살, 무엇보다 밥 벌이가 걱정되었습니다.
졸업연주 무대에 오르면서도 이 순간이 내가 살아온 음악 인생의 끝 세로줄 임을 직감했습니다.

2. 밥벌이 인생 시작...

그렇게 음대를 졸업한 2017년도 2월부터 동대학교 테크노과학대학 미생물나노소재학과의 조교로 근로계약을 하였습니다(본격 밥벌이 인생 시작).

해당 학과 조교를 선택한 이유는 세 가지였습니다.

1. 십수년간 음악만 해온 사람이 갑자기 행정/사무직으로 취업하는건 거의 불가능했다. 
   이런 입장에서 모교의 조교 생활을 하며 행정/사무 업무 시스템을 경험해보는 것은 
   쏟아지는 비를 피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2. 대학교에서는 취업률 상승을 위해 해당 대학 졸업생들을 조교로 적극 채용해준다. 
   즉 취업 허들이 매우 낮다.
3. 출신 학과 조교를 하는게 보편적이지만 그렇기엔 피아노과 조교는... 할많하않이다.

미생물나노소재학과 조교로 사회생활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개발자가 되는게 운명이 아니었나 싶은 이슈였습니다.


미생물나노소재학과는 다시 말하면 생물학과입니다. 나름 공대와 비슷했고 실제로 단과대학(테크노과학대학) 건물이 공과대학과 붙어있었죠.

조교로 근무하며 졸업생들의 인턴쉽 계약서를 작성했고, 또 여러번의 취업 특강을 진행하다보니 평생 접하지 못했던 과학기술 관련 내용을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2017년도에는 우리 대학에 빅데이터 바람이 불어서 취업 특강 하면 주제가 빅데이터였고, 그덕에 저도 빅데이터 전문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조교 계약은 1년단위로 최대 2년간 근무할 수 있었고, 곧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에서 서른살마저 조교로 보내기엔 시간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선택지가 많이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고, 공공기관의 빅데이터 전문가를 양성 과정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제출했지만 당연히 탈락했습니다.

3. 무슨 엔드? 백엔드? 뒤끝?...

'도대체 빅데이터 전문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에 대해 파고들다가 찾은 것이 백엔드 개발자였습니다.
빅데이터 전문가는 학력과 경력을 모두 보기 때문에 백엔드 개발자로 접근해서 경력을 쌓은 뒤 빅데이터 전문가로 포지션을 변경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보게 된 것이죠.

그러면 백엔드 개발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여기서 만나게 된 글이 바로 이동욱님의 글이었습니다.
1) 3번째 직장에 오기까지

위 블로그 내용과 같이 국비과정은 피하고싶었지만 집안에 당시 큰 문제가 발생하여 금전적인 지원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대전의 IT 국비학원들을 찾아가 몇 차례 면접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하나같이 다 좋은데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이 없어서 입학은 어려울 것 같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하다못해 필기시험이라도 붙는다면 받아주겠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반쯤 포기했던 것 같습니다.

금전적 지원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돈을 모아서 뭐라도 해야하나? 생각했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이런 생각을 부모님께 공유드리니 최소한의 지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곤 말씀하셨죠.


이왕 개발자가 되기로 한 거, 정보가 느린 지방보다 서울에서 공부를 하는게 어떻겠니?



2019년도 8월, 역삼동에 있는 ITWILL 국비학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약 1년간의 고시원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과정은 흔하고 흔한 웹 개발자 양성 과정이었지만 정말 훌륭한 동료들을 만난 덕에 서로 자극받으며 6개월간 거의 매일같이 밤 9시까지 남아 공부하고 또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이 땐 몰랐지... 난 분명 백엔드 개발자가 되고싶었는데 어쩌다가 SI 프로젝트를 뛰고있는걸까..?

2020년도 2월에 국비과정을 마치고 면접을 본 회사 세 곳 중 한 곳에 합격하여 2020년도 3월부로 입사하였습니다.

4. 개발 프로그램은 어떤걸 설치할까요?

개발 생태계를 잘 모르는(SI, SM, 서비스, 플랫폼 등등의 IT 회사 구조) 입장에서 처음 입사한 회사가 그저 판교에 있어서 좋았습니다. ㅋㅋ
첫 출근을 하는 날 자리를 배정받고 여기저기 인사를 드리고 자리에 앉아서 공부를 위해 가져온 책을 정리하고 책상을 닦고 어느 부장님께 여쭤보았습니다.


개발 프로그램은 어떤걸 설치하면 될까요?


되돌아온 답변은 '응? 여기에선 그런거 설치 안 해도 돼'

그 때까지만 해도 저 답변의 뜻을 전혀 몰랐습니다.
당연히 회사에서 개발을 하는 줄 알았는데 우리 팀 자리가 여러곳이 비어있었습니다.
부장님들은 대부분 어떤 서류를(나중에 알게되었지만 제안서를 열심히 쓰고들 계셨던 거...) 작성중이셨고, 4주간 본사대기 및 OJT를 마친 후 처음으로 파견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이야 SI 회사들의 생태계를 뻔히 알고있으니 너무도 이해하기 쉬운 내용들이었지만
입사 초기에는 본사에서 대부분 개발을 하고 짧게짧게 출장을 다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5. 첫 글을 마치며...

다음 글에서는 SI 개발자로 살아온 후기와 퇴사까지, 그리고 백엔드 개발자로 포지션을 바꾸어 이직하게 된 이야기를 다뤄볼 예정입니다.
근래 퇴사를 앞두고 여러 회사들에 면접을 다니다보니 하나같이 음대 출신 개발자는 처음본다고 하시더군요.

사실 제 지인 개발자들 중에서도 음대 출신 개발자는 손에 꼽습니다.
첼리스트였던 개발자
작곡가였던 개발자
실용음악과 보컬리스트였던 개발자
드러머였던 개발자
피아니스트였던 학과 후배 개발자
마지막 한 명은 CC로 시작해 지금은 아내가 된 제 와이프네요.

문과 출신, 이공계열이지만 개발과는 상관없는 비전공자 출신, 사회생활을 하시다가 20대 후반~ 30대 중반에 진로를 바꾸신 분들 등등 많은 비전공자 출신 개발자들을 만나왔지만
생각해보니 음대 출신 개발자는 정말 드문 것 같습니다.

저는 개발자로 진로를 확정짓기까지 너무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려서 피아노 유학생활을 했다보니 중졸이었고, 고등학교는 검정고시로 나왔습니다.
10년 넘게 음악만 공부한 입장에서 갑자기 개발자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고 단정지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1년이 넘는 시간을 선택하지 못하고 고민만 하느라 아깝게 날렸습니다.
그래서 저와 같은 생각으로 개발에 입문조차 못 하고 계신 예술인 분들에게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작은 용기라도 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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